Freedom과 Liberty의 차이를 아시나요?

현대 민주주의를 규정하는 핵심이자, 또 복잡한 사회문제에 대응하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개념이 바로 "Liberty"이다. Liberty라는 개념 자체가 없는 우리 언어체계에서 Liberty와 Freedom은 둘 다 "자유"로 번역된다. 물론, Liberty와 Freedom은 큰 범주에서 유사한 개념이고 한국어의 '자유'가 두 단어의 개념을 포괄한다고는 할 수 있다. 하지만, Liberty와 Freedom은 단어의 정의는 유사할지언정 역사적으로 문화적으로 갖는 가치가 근본적으로 다르다. 

로크/밀/루소 등 현대 민주주의의 토대를 만든 사상가들은 모두 이 Liberty라는 단어의 의미에 천작하여 민주주의 사상에 대한 정의를 시작했으며, 근대 이후 민주주의 역사는 사실상 이 "Liberty"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고 수정해나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Freedom이 문자 그대로의 '자유'라는 의미에 머물러 있는 사이 Liberty는 자유민주주의의 역사와 함께하면서 수백년간의 고민이 농축된 단어 이상의 개념으로 진화해왔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우리 사회에 Liberty와 Freedom의 차이에 대한 개념이 부족하다는 것은, 민주주의를 성숙시켜 온 과정과 그 결과로서 합의된 현대 민주주의의 근본 개념이 불명확하다는 것과 같은 의미일 것이다. 이러한 부지(不知) 혹은 무지는 정치적/사회적으로 수많은 실패와 오류로 귀결되고 여러 분야에서 터무니없이 잘못된 생각들로 연결된다. 

우습지만 간단한 예가 있다. 애플의 스티브 잡스가 했던 생전에 했던 유명한 프리젠테이션 중에서 "애플의 혁신은 기술과 Liberal Arts를 결합했기 때문이다."라는 말이 있었다. Liberal Arts의 Liberal은 Liberty의 개념을 이해하지 않고서는 정확하게 해석할 수 없는 단어이다. 우리나라에서는 Liberal Arts가 '인문학'으로 번역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통용되는 인문학이란 고등학교때 인문계/자연계를 구분하던 '인문'이고, 국어사전에서 인문학은 "언어,문화,역사,철학을 연구하는 학문"으로 정의돼있다. 하지만 Liberal Arts는 절대 '인문계열' 학문이 아니다. Liberal Arts의 대표적인 학문 영역을 정의한 "근대7학문"에서 7대 학문은 "문법, 논리학, 수사학, 수학, 기하학, 천문학, 음악"으로 이뤄져 있다. 소위 이과계열 학문이 3개나 포함돼 있고 예체능도 있는데, 근대7학문이 어딜 봐서 '인문계열'인가? 스티브 잡스가 혁신에 Liberal Arts가 중요하다는 말이 유명해진 이후 국내에서는 그동안 인기가 없었던 '인문계열 학과 부흥'을 이야기하고 인문학 강좌가 유행처럼 번지기도 했으니 우리가 가진 오해의 간극이 실로 크다.

Freedom과 Liberty의 차이는 크고 미묘하다. 하지만 반드시 이해해야 한다. 둘 간의 차이를 비교적 쉽게 설명한 인터넷 상의 글이 있어 번역해보았다.

Freedom은 타인이나 특정 권위의 통제로부터 해방되는 것을 의미한다. 반면, Liberty는 어떤 사회나 국가의 구성원들이 정부로부터 보장받아 공통으로 소유하고 있는 권리의 총합을 의미한다. 

Freedom이 국가나 타인으로부터 얻어내는 것이라면 Liberty는 사회 안에서 형성되는 것이며 사회구성원들이 서로가 서로에게 부여해 공유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집회의 자유는 일반적으로 Freedom이라고 생각되지만 사실 Liberty의 한 측면이다. 

Freedom은 다른 누군가의 Freedom과 충돌할 때 성립되지 않는다. 당신은 담배를 필 Freedom이 있지만 담배연기를 흡입하지 않은 나의 Freedom이 당신의 Freedom과 충돌할 때 당신의 담배 필 자유는 성립되지 않는다. Liberty는 이러한 구성원간의 상충이 전혀 없다. 나의 Liberty는 당신의 Liberty를 절대 제한하지 않는다. 

보수주주의자들도 전통적으로 Liberty를 지지한다. 하지만, 그들은 일련의 Liberty가 아닌 Freedom도 중요하게 생각하고 Liberty가 아닌 자유들도 옹호하려고 한다. 그들 자신이 언젠가 자신의 자유로 인해 잠재적으로 타인의 자유를 제한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스스로를 보호하려고 하기 위함)이다.    

출처 : http://www.naciente.com/essay36.htm

Freedom은 문자 그대로의 자유에 가깝다. 남한테 터치받지 않고 내 맘대로 사는 것이다. 하지만 무한정 내 맘대로 살수는 없다. 나의 거리낌없는 행동이 누군가에게는 피해가 되고 심하면 범죄가 될 수 있다. 그래서 법이 존재하고, 법이 있는 사회에서 Freedom은 제한받는다. 공공기물을 함부로 다룰 수 없고 금연구역에서는 담배를 필 수 없다.

Freedom이 개인적인 것이라면, Liberty는 사회적인 합의의 과정을 거쳐 어떠한 경우에도 제한없이 보장되는 것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인간다운 삶이라는 것이 있다. 상황에 따라서 내 Freedom을 포기해야할 때도 있지만, 그래도 어느 순간에도 양보할 수 없는 인간이니까 보장받아야 할 자유들이 있다. 바로 독립적으로 사고하고 자신의 행복을 추구하고 필수적인 삶의 질을 유지하는 것들이다. 우리나라 헌법에 명시된 인간다운 삶을 위한 사회경제적 자유들은 Freedom이 아니라 Liberty이다. 

Liberty는 Freedom에 대비해 두 가지 특성을 갖는다고 할 수 있는데, 

(1)모든 사람이 공통적으로 인정하는 자유이고

(2)모든 사람에게 평등하게 부여된 자유이다.

 Freedom이 그냥 자유라면 Liberty는 평등한 자유이고 인간의 존엄에 더 가까운 말이다. 

우리는 자유민주주의 사회를 지향한다. 간혹 분에 넘쳐서 하는 말 중에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 내 맘대로 하는데 니가 무슨 상관이냐"라는 것도 있는데 자유주의란 Liberty를 수호하자는 것이지 Freedom을 보장하자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 말은 명시적으로 잘못된 말이다. 

Liberty를 보장하자는 자유주의에 평등한 정치참여를 보장하는 민주주의가 필요한 것은 사회가 Liberty를 합의하는 과정을 고려했기 때문이다. "모두가 공유하는 평등한 자유"를 도출해야 하기 때문에 특정 계층에 편중되지 않고 모두에게 동등한 참여 권리를 부여하는 공정한 사회의 의사결정과정이 반드시 필요했던 것이다. 그래서 자유주의는 늘 민주주의와 함께 해야 한다.  

기업은 경쟁을 통해 이윤을 추구하는 것을 존재의 목적으로 하고, 기업의 이윤추구 과정에서 사회 전체의 효율성을 높이는 기여를 한다. 국가는 사회 전체의 경제적인 부를 증진시키기 위해 기업의 자유로운 경제활동을 보장하고 지원해야 한다. 하지만, 기업이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쓰는 경영전략으로 인해서 능력이 부족한 어떤 개인이 (그것이 누구의 탓이든 관계없이) 사회 안에서 도태되고 사회적으로 합의된 Liberty를 누리지 못한다면 기업의 경쟁전략은 Freedom의 영역이긴 하나 Liberty를 위해 제한될 수 있다. 아니 제한되어야 한다. 이게 경제민주화라는 굳이 안써도될 단어로 표현되는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의 원리이고, 자유민주주의 사회가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모습이다. 

그러면 앞서 언급한 Liberal Arts란 무엇인가. Liberty를 이해하면 간단한 정의가 있다. "자유인으로서 가져야 할 필수 교양"이라는 의미이다. 여기서 자유인이란 해방된(free) 인간이 아니라, "Liberty를 가진 인간"이라는 뜻이다. 단순한 자유-Freedom을 정의하기란 참 쉽다. 그냥 "니 맘대로 해라"라고 하면 된다. 하지만 개인의 자유는 사회에서 늘 충돌한다. 어떤 자유는 통제돼야 하고 어떤 자유는 포기해야 하고.. 이런 과정을 거쳐서 Liberty의 범주를 결정하는 문제는 굉장히 복잡하고 어렵다. 하물며, 이런 과정을 수백년 거쳐서 사회의 모든 사람이 합의하는 Liberty를 추려내는 일은 얼마나 어렵겠는가. 이 어려운 일을 해내고 Liberty를 누리며 사회를 건강하게 유지하고 보호하려면 사회 구성원이 기본적으로 알아야 하는 사실들과 남들과 토론하기 위해 필요한 소통의 기술들이 있어야 한다. 그 지식과 기술이 바로 Liberal Arts다. 스티브 잡스처럼 비즈니스 아이디어를 뽑아내려고 인문학을 공부해야 하는게 아니라, 세상의 복잡성을 이해하여 어떤 자유를 제한하고 어떤 자유를 지켜낼 것인가라는 위대하면서도 어려운 문제를 이해하고 토론하기 위해 Liberal Arts를 공부해야 하는 것이고, 막연한 자유의 보장이 자유민주주의가 아니라는 걸 알기 위해 인문학을 공부해야 하는 것이다. 

한국 사회의 담론들에서는 Freedom과 Liberty가 혼재되어 있다. 그래소 GDP와 기업의 국제경쟁력을 올리자는 얘기들이 바림직한 사회구조에 대한 이야기와 뒤섞여서 이도저도 아닌 결론들이 도출된다. 국가의 기능에 대한 분명한 합의도 옅기만 하다. 

자유주의자, 민주주의자, 진보주의자는 모두 생각의 근원에 Liberty가 있어야 한다. 그래서 미국에서는 민주진보진영을 Liberals라고 부른다.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보수세력에 대항하는 진보주의자의 무기는 인간다운 삶 - Liberty에 대한 당위여야 하고, 이 "Liberty의 당연함"을 사회에 이야기하고 이해시키는 과정이 정치활동이 돼야 한다. 그러한 노력없이 말로만 '사람이 먼저다'를 외쳐서는 Freedom과 Liberty가 뒤섞인 이 사회 속에서 진보는 공허한 외침이 되고 비현실적인 행동주의자로서 비쳐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 사상과 행동 양면에서 진정한 Liberals라고 부를 수 있는 정치세력이 존재하는가? 

아직은 아닌 것 같다. 
이제부터라도 차곡차곡 시작하자. 근원으로 돌아가 개념과 원리를 이야기하자.
그 존재만으로도 사회가 진일보했다고 할 수 있을 테니까.